어제 우연히
미라클 모닝을 하는 변호사 유투버가 나오는 유퀴즈를 봤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도
공중파에서 유재석의 질문을 받는 걸 보니 그분이 더 특별해 보였다.
가끔 하던 새벽 기상의 욕구가 솟아올라 오늘은 새벽 4시 반에 눈을 떴다.
새벽 미사 전에 달려보자.
달리기는 역시 새벽 달리기지.
대충 입고 나와서 어제 스터디 과제로 녹음한 암기 소스를 들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도 별로 없고
아직 어둡고
오늘은 의욕에 넘쳐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일은 5킬로 halfway point부터 일어났다.
오늘은 유산균도 안 먹고 나왔는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찾아보니 한강 라인에는 화장실이 없고
저어기 주차장을 건너야 멀찍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안경도 없고 어두워 정확히 분간도 안 갔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일단 좀 더 달려보자 싶어 달렸다.
조금 더 달리자 배가 가라앉는 듯싶었다.
극심한 운동에는 역시 내장으로 가는 혈액량을 줄이고 내장 근육을 이완시킨다더니 그게 맞나 보네.
하지만...
달리다 보니 점점 ‘위급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1킬로쯤 속도를 줄이고 더 달렸을 때 멀리서 화장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정확히 안 보여 확신할 순 없다)
아 더러울 텐데… 저기까지 갔는데 화장실 문이 잠겨있으면 어쩌지.
조금 더 참으면 집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더 가보자.
이젠 헤드폰에서 울리는 그 어떤 내용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상이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결국 바지춤을 부여잡고 덤불 뒤로 갔다.
인도는 저어 쪽이니 걷는 사람이 날 볼 수는 없겠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빨리 지나가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싸는데 울뻔했다.
아 수치스럽구나.
그리곤 서둘러 나오는데
길 저편에 운동기구에서 내 쪽을 바라보며 운동을 하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아 젠장젠장.
왜 들어가기 전엔 못 봤던 걸까.
내가 뭘 하는지 알았겠지.
그래도 어둠과 덤불이 가려줬으니 보이진 않았을 거야.
아 젠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안경도 없었고
어두워 남잔지 여잔지 분간도 안 가는데 흑...
어쩔 수 없지.
그냥 외면하고 남은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을 만큼 빨리 달려 집으로 왔다.
원래는 끝나고 마무리 운동도 꼭 챙겨하는데 오늘은 패스.
너무너무 너무 찝찝했다.
음악도 필요 없었다. 지루함도 없었다.
부끄럽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음에 저 사람이 날 알아보면 어쩌지?
못 알아보게 헤어스타일을 바꿔야 하나.
일단 오늘 입은 옷은 다시는 입고 뛰지 말아야지.
저 사람이 다음에 헤드폰을 낀 나를 알아보면 어쩌지?
만약 그 사람이 나보고 "지난번에 저기에 당신이 똥 쌌잖아요!" 이러면
나는 기억을 조작해서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
그러고는 계속 당신이 틀렸다고 주입하면 이 일은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 거야.
하아...
별생각이 다 들고 난 후 집에 와서 씻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동안 달리기가 힘들고 지루했었던 건...
뭐랄까 내가 등 따시고 배불러서 생긴 사치 같은 거였었다.
아마 내가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에 휘말려 정신없이 그 시간을 보내게 되면
나는 그 시간을 보내기에만 급급하지.
그 상황을 느낄 정신이 없는 거다.
내가 지금 공부가 힘들고 지루한 건,
공부를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하는 건,
아직 간절하고 급하지가 않다는 증거.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
참... 배탈 난 건 헐렁한 셔츠 때문에 배가 차가워져서 그랬던 것 같다.
다음부터는 배를 따듯하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