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절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에너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약속을 여러 개 한꺼번에 잡지 않는다고…
나름 약속 전에 컨디션이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조절하고
가능하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난다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만나면 자기가 괴물로 변하는 게 느껴진다며.

오늘 점심 약속이 갑자기 생겼다.
오늘 저녁 약속은 오래 전에 잡아 둔 거고
점심은 어제 불쑥, 우리 집 앞으로 와준다기에 편하게 잡았다.
근데 그게 이렇게 에너지를 잡아먹을 줄 몰랐네…
그저 가볍게 신세한탄 하는 걸 받아줬어야 했는데
너무 힘을 썼다.

물론 그게 그 아이에게 필요해보이기도 했고
원래 눈앞의 어떤 걸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하아 내 탓인거네.
나는 왜 내 앞의 공부는 그렇게 잘 외면하면서
누군가와의 넋두리, 고민상담 이런 건 외면하지 못하는 걸까.
관계지향적인 성격이라 그런 건가… 하아..

문제는 원래 약속을 나가야 하는데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는 거다.
피곤하고 지친다.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쓸 정도의 소중한 사람은 아닌데…
진짜 중요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만나야 하는데… 하아…

조절이 필요하다.
에너지 조절은 사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았던 영역인데 이제 에너지 조절도 해야 한다.
술조절도 원래는 필요 없었는데 이제는 술도 조절해서 마셔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점점 더 실수하기 쉬운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인건가.

일단 에너지를 잘 지켜야겠다.
피곤하다…
이럴 때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비밀을 누설하거나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갑자기 들은 게 너무나 많고 입이 근질근질하다.
하아…
하지만 내 실수를 누가 말하고 다니면 나도 비참하고 싫으니…
역지사지!
나도 조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