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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급하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옷도 외모도 단정하지만
되게 두서없이 길을 묻고,
눈에는 급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일단 내가 모르는 것이었고
여러사람이 대화중이었고
굳이 애를 써서 도와줄만큼 호감있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 말고도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난 모르니까.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가벼운 선의를 보이며 자세히 지도를 함께 보며 알려주었지만
(그가 입은 수도복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 예상대로 고맙다는 말도 없이 뛰어가버렸다.
누군가는 저런 상황에서도 호의를 보이네
하지만 대부분은 방관하겠지.

사례2.
아는 동생 생일이었다.
친해진 이후로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같이 모여서 그 아이의 매 해 생일마다 뭔가를 하고 보냈다.
그 아이는 되게 무심한 듯 하지만 즐기는 듯 보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일이 왔을 때
그 아이는 자신의 생일에 무심한 척 했던 것처럼
무심했다.
함께 왁자지껄하게 지내느라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언젠가 대화로 감정이 상하는 계기가 생겼고
이 아이를 관찰하게 됐다.
그리고
꽤나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데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 하네.
굳이 애쓸생각이 없어졌다.
그래서 애정을 주는 걸 멈췄다.
생일은 그냥 가볍게 인사로 축하했다.
만약 내가 한 번이라도 기억에 남는 생일선물을 받았거나,
평소 나에게 마음을 쓴다는 느낌이었다면
뭐라도 했겠지만
그저 놀이상대, 시간을 보낼 상대였던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는 본인 생일 즈음에 특별히 우울해하는 것 같았지만
(주변에서 작년 재작년 같은 생파나 챙김은 없었던 것 같다)
내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아이에 대해 나와 비슷하게 느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되면야 축하해주지만,
나에게 애쓰지 않는 사람을 내가 왜 굳이...?

자애로운 미소시지만 냉철한 조언을 심장에 꽂아주시는 팩트폭격자! ㅋ


사례3.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에서
어떤 질문자가
<자기가 잘해주고 친하게 지내왔던 언니랑 사이가 안 좋아졌다.
너무 마음이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스님 왈
<본인이 친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잘해줘야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가능성이 높을까요?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안해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까요?>
<제가 잘 해주면 저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 본인이 잘 해준거 맞죠? 그 언니가 자기를 좋아해주길 바라면서.
그런데 그 언니가 내가 잘해준다고 100% 나를 좋아할까요? 아니면 아닐 수도 있을까요?>
<......>
<세상 이치는 그런 거에요.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잘해주는거지.
내가 잘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꼭 좋아해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내가 그 사람 마음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잖아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맥락은 이러했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몫이 있고,
그리고 할 수 있는 몫이 있고,
자기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 결과값이 기대한 대로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거다.
내 기대와 상황이 다르게 돌아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내가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고,
한정된 에너지를 굳이 거기에 쏟을 가치가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거다.

그래서 길을 물어본 사람에게 적극적인 친절을 베풀지 않아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나는 상당히 상호적인 사람이라
물어본 사람이 어땠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거든.
어떤 사람은 상대에 상관없이 "마이웨이" 자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고
나 같은 상호적인 사람들 (사실 보통은 나와 비슷하겠지)은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내가 아무리 마이웨이라도
내가 가진 매력이 넘치거나, 내가 (상대에게) 가치가 있게 보이거나 하면
나에게 호의와 선의와 애정이 넘치겠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기적인 그 아이를 향한 애정을 멈춘 것에 죄책감이 있었는데
내 몫은 분명해졌다.
악의를 가지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
아직 내가 되게 높은 경지의 사람은 아니니까
일단 그저 바라보고,
지금 내 상태에서 노력할 만한 것과
쉽게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놓아주어야 할 것들을 식별하는 것

그저 흘러가 버릴 뜬구름 같은 것들을
이렇게 기록해놓으니 좋으다.
이렇게 기록할 수 있는 힘이
바로 내가 가진 복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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