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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드라마

나의 문어 선생님

日就月將 2022. 11. 26. 08:34
진짜 gorgeous!!!

되게 오래 전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고서 기억에 담아두었던 영화이다.

공부가 시작되고 극도로 예민해지고 약한 자극도 오래가는 그 시기가 되자
영화, 연극, 독서, 음악, 미술 등등... 보고 느끼고 여운이 남는,
어떤 강한 자극이 될 것들은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험의 한 템포가 끝나고 보게 된 첫 영화...

소진되고 어떤 막혀있는 것 같은 마음에
오래도록 해왔고 또 그렇게나 좋아하던 영화를
찍거나 보고 싶지도 않고 카메라를 들고 싶지도 않아진 영화감독 주인공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서
우연히 생각난 어릴 적 바다.
그 안으로 들어가 그렇게 만나게 된 바닷속 생물들
바다속은 우주 같아서 신기하고 때론 무섭고 또 무척이나 자유로웠다.
자주 그 곳에 가게 되면서
마주친 신기한 녀석들
그리고 언젠가부터 눈길이 끌리게 된 문어
그 녀석을 관찰하기 위해 매일 바다에 들어간다.

위장술의 천재인 그 녀석은
조개껍데기를 온 몸에 붙여 조개인 척 하기도 하고
몸의 색깔과 질감을 바꿔 모래인 척, 돌인 척 한다.
다시마를 온 몸에 두르고 그 안에 몸을 동그랗게 말아 숨어버리는 그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여튼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신기한 녀석일세. 이 안에 문어가 숨어있다 ㅎ


어떤 걸 바라보고,
그 대상의 특징을 파악하고,
위기상황으로부터 혹은 사냥을 위해 위장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변형하는
그런 단계를 거쳐 사고하는 문어.
그래서 문어를 지능이 높다고 하는구나.

아니 이런 유연한 상황대처능력이라니!
위기에 빠지면 자기 눈만 아웅가려버리는 미련한 동물도 많은데...
(꿩만 그러는 게 아니다. 사람도 때때로 그런다. 가끔 나도...? ㅋ)

매일 어떤 대상을 관찰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간 모습이
매일 달리기를 하며 작은 변화라도 바랬던 내 모습 같았고

이렇게 슬쩍 다리를 뻗는 문어양


그렇게 문어의 마음이 열려 문어가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긴 다리를 뻗었던 모습은
우리집에 아즈냥이 오고 한참이 걸려 나의 손길을 처음 허락했을 때 같았다.

아즈냥 쓰담쓰담 첫허락


카메라렌즈를 떨어뜨리자 놀라(startled) 사라져버린 문어를 생각하며 자책하는 건
나 때문에 우리 뚱냥이들이 아픈 것 같아서 자책하던 나 같았다.

상어에게 공격받고 팔이 뜯겨 몸이 하얗게 질린 후 굴에서 쉬고 있는 문어를
매일 바라보며 응원하지만,
문어를 위하는 마음에 상어를 쫓아내고 싶고 사랑하는 문어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기 위해
자제하며 꾸역꾸역 참아내며 관찰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존경스러웠다.
내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지만
그 상황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 같기도 했다.

상어에게 팔이 뜯긴 어려움을 딛고 결국 회복해내는 문어
그 상처에 생긴 작은 발...
그 발을 보며 이상하게도 희망이 솟아났다.
그리고 상처받고 마음의 굴에서 쉬다가 회복해 다시 세상으로 나온 몇몇이 생각났다.
그래... 그게 나였던 때도 있었지.
제목을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고 지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존재는
짝짓기를 하고,
수십만 마리의 알을 낳고,
청소부물고기들의 밥이 되어
그렇게 자연으로 다시 돌아갔다.
매일 조금씩 삶을 놓아가는 그 생명을 촬영했던 주인공은
우리가 반려동물을 보낼 때 느끼는 그 상실감과 비슷한 걸 느끼는 것도 같았고
그건 어쩌면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 그 어떤 것이든
깊이 사랑했던 어떤 대상을 떠나보낼 때의 그 아픈 마음과 같은 것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문어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밖으로 나갈 힘을 얻은 주인공은
문어가 낳은 작은 새끼문어들을 바다에서 만나며
혼자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아이와 함께 바다를 헤엄친다.
이젠 좋은 아버지가 될 힘도 다시 얻었으니까...

문어와 함께한 시간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마음에 남아...



좋은 영화를 보며
이렇게 배우는 구나.
내가 가지고 싶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도 얻어가게 되네.


[나의 문어 선생님]을 선택한 건 정말 탁월했다!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추천해준 그에게 감사함을 보낸다.

그리고 나도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
아 참...
가능한 큰 화면으로 보는 게 좋다.
핸드폰으로 대충 보다가, 빔프로젝터로 쏴서 보니까
그 느낌이 무척이나 다르다.
모니터나 TV
그래 최소한 TV 정도 이상의 크기로 보는 걸 추천!

오랜만의 영화 감상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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